파리 대신 베를린, 일본 백화점 바이어들이 몰리는 이유
파리 쏠림 시대, 신진 디자이너는 베를린에 있다
파리 쏠림 시대, 신진 디자이너는 베를린에 있다
지난 7월 초 열린 베를린 패션위크(BFW) 2027년 봄여름 시즌에 일본의 유력 백화점·편집숍 4곳이 초청 게스트 자격으로 바이어와 머천다이저를 파견했다. 미쓰코시이세탄과 다카시마야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참가고, 유나이티드애로우즈와 한큐한신백화점은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참가 자체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타이밍이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패션 바잉이 파리 한 곳으로 쏠리는 흐름이 매 시즌 강해지는 와중에, 정작 그 쏠림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이어들이 베를린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번 방문의 실질적인 뉴스다. 파리에서는 만날 수 없는 브랜드를 찾으러 일부러 파리를 벗어난다는 이 역설적인 움직임이 왜 지금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일회성 방문인지 흐름의 시작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과거 BFW는 실험적 표현과 관념적인 크리에이션을 앞세운 브랜드가 많다는 인상이 강했다. 좋게 말하면 개성이 강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실제 매장에 걸기엔 리스크가 큰 컬렉션이 대부분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 참가한 바이어들이 공통적으로 짚은 변화는 "크리에이션과 리얼리티의 균형"이다. 업사이클링 소재를 활용하면서 여성의 신체성을 정직하게 반영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은 '로라 게르테(LAURA GERTE)', 그리고 "여성이 일상 속에서 옷을 입는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 프레젠테이션으로 눈길을 끈 '소피아 헤르멘스 페르난데스(SOFIA HERMENS FERNANDEZ)'가 대표적이다. 두 브랜드 모두 베를린 특유의 언더그라운드 무드와 개성은 유지하면서도, 고객이 자신의 스타일에 실제로 대입해볼 수 있을 만큼 상업적 개연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즉 이전까지의 베를린이 "보는 재미는 있지만 팔기는 어려운" 무대였다면, 지금은 실제 바잉으로 이어질 수 있는 브랜드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을 지켜본 바이어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왜 지금인가
이 흐름의 배경에는 파리 쏠림에 대한 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있다. 유나이티드애로우즈 바이어는 코로나 이전부터 해외 바잉이 파리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졌고, 파리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라인업을 채우면 시장이 동질화되고 파리에 오지 않는 잠재력 있는 브랜드와의 접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여러 시즌째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즉 베를린 방문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바잉 포트폴리오가 한 도시에 쏠리는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실무적 판단에 가깝다. 여기에 독일패션협회가 일본·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맞물린다. 미쓰코시이세탄 바이어는 일본에 성숙하고 패션 감도가 높은 소비자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어, 베를린의 실험적이면서도 정제된 크리에이션과의 친화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려는 유럽 쪽의 필요와, 파리 일변도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라인업을 원하는 일본 유통사의 필요가 이번 시즌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결국 이는 한 도시의 인기가 아니라, 공급자와 수요자 양쪽의 이해관계가 동시에 움직인 결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다음에 볼 것
관건은 이런 관심이 실제 매대까지 이어지느냐다. 바이어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지점은 베를린 브랜드들이 프레젠테이션과 세계관 구축에서는 이미 높은 완성도를 보이지만, 비즈니스로서의 지속성과 스케일업에는 아직 성장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음 시즌 눈여겨볼 것은 신작 컬렉션의 완성도보다, 로라 게르테나 소피아 헤르멘스 페르난데스 같은 브랜드가 실제로 일본 매장에 입점해 판매 실적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한큐한신·유나이티드애로우즈처럼 이번에 처음 참가한 유통사가 다음 시즌에도 재방문하는지다. 참가 횟수가 한 번에서 세 번으로 쌓여가는 미쓰코시이세탄·다카시마야의 사례처럼, 재방문이 반복될수록 베를린은 파리의 대안이 아니라 파리와 병행하는 정규 바잉 루트로 자리잡게 된다. 이번 시즌 참가사가 2곳에서 4곳으로 늘어난 것처럼, 다음 시즌 참가 유통사 수가 더 늘어나는지도 이 흐름이 일시적 유행인지 구조적 변화인지를 가늠할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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