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유엔 사막화 회의장에 간 이유
캐시미어 산지 지키기, 로로피아나의 선택
캐시미어 산지 지키기, 로로피아나의 선택
로로피아나가 8월 17일부터 28일까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 제17차 당사국총회(COP17)에 참가했다. LVMH 모엣 헤네시 루이비통 산하의 이 브랜드는 프레데릭 아르노 최고경영자를 처음으로 몽골에 보내, 공식 사이드 이벤트 무대에서 회사가 현지에서 추진해온 캐시미어 산지 보전 프로젝트 '레질리언트 스레드(Resilient Threads)'의 1년 차 성과를 직접 소개했다. 명품 브랜드의 최고경영자가 사막화·토지 열화를 다루는 국제 협약 총회에, 그것도 자사 원자재 산지의 이름을 걸고 등장하는 장면은 흔한 그림이 아니다. 패션 하우스가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방식이 이미지 캠페인 수준을 넘어, 원료 공급망 자체가 걸린 국제 협상 테이블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만하다.
무엇이 달라졌나
로로피아나가 COP17에서 공개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이미 1년간 돌린 실행 프로젝트의 성적표다. '레질리언트 스레드'는 2025년 시작한 5년짜리 프로젝트로, UNCCD와 지속가능한 섬유 연합(SFA), 오디세이 보전 트러스트(OCT)와 손잡고 몽골에서도 환경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꼽히는 수흐바타르주의 5개 지구에서 목축민의 생활 지원과 초원 생태계 보호를 동시에 진행한다. 이 지역이 다급한 이유는 숫자로 이미 드러나 있다. 몽골 국토의 약 77%가 토지 열화 영향권에 있고, 지난 70년간 평균 기온은 2.1도 올랐다. 2023~24년 겨울 몽골을 덮친 대규모 한파 '조드'는 국토의 약 90%에 영향을 미쳐 전체 가축의 12.5%, 캐시미어를 생산하는 염소만 따지면 23.4%가 폐사했다. 그 여파로 피해 목축 가구의 캐시미어 생산량은 53.9% 줄었고 가구당 캐시미어 수입은 평균 420만 투그릭(약 186만원 상당) 감소했다. 몽골 전체로는 캐시미어 생산액이 16.5%(약 127억엔 상당) 줄어 세계 공급량의 6.5%가 흔들렸다. 원료를 사는 쪽이 아니라 원료가 나는 땅 자체를 보수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왜 지금인가
COP17이 이번에 유독 민간 기업의 참여를 강조한 배경에는 메울 수 없이 벌어진 자금 격차가 있다. UNCCD는 토지 열화로 전 세계가 매년 최대 9000억 달러의 경제 손실을 보고 있다고 추산하면서, 이를 복구하는 데 연간 약 3550억 달러가 필요하지만 실제 투입되는 돈은 770억 달러에 그친다고 밝혔다. 정부 재정만으로는 이 격차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이번 총회의 핵심 논점이었고, 그 빈틈을 메울 후보로 민간 기업과 금융기관이 지목된 것이다. 로로피아나 입장에서도 이건 자선이 아니라 위험 관리에 가깝다. 최고급 캐시미어의 상당 부분이 몽골산 원모에 기대는 구조에서, 2023~24년 조드처럼 이상기후 한 번이 원료 수급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걸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 브랜드는 많지만, 원자재 산지의 재해 통계를 자기 사업 리스크로 인정하고 국제 협약 무대에서 목축민, 협동조합, 정부와 함께 직접 나서는 사례는 아직 드물다. 지속가능성이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조달 전략의 일부로 넘어가는 흐름이 지금 명품 업계 안팎에서 동시에 감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에 볼 것
아르노 CEO는 이번 스피치에서 "탁월함은 소재를 고르는 안목이나 장인정신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이 땅에 사는 목축민, 협동조합, 정부, 그리고 이 훌륭한 섬유의 품질과 전통을 지키는 모든 이들과의 장기적 관계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몽골과의 관계를 계속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리더인 바트히시그 바이발 SFA 공동창립자 겸 지속가능성 자문은 기후 재난의 빈도와 규모가 늘어나는 것을 최대 과제로 꼽았다. '레질리언트 스레드'는 이제 5년 중 1년 차를 지났을 뿐이라, 앞으로 나올 2~4년 차 보고서에서 목축 가구의 소득 회복률이나 초원 생태계 지표가 실제로 개선되는지가 이 프로젝트의 진짜 성적표가 될 것이다. 아울러 UNCCD가 지목한 자금 격차 앞에서 다른 명품 하우스나 섬유 대기업이 비슷한 산지 직접 투자에 나서는지도 지켜볼 지점이다. 원료 산지를 브랜드가 직접 관리하는 모델이 캐시미어를 넘어 울, 가죽 등 다른 천연 소재로 확장될지, 혹은 이번 COP17 참여가 일회성 홍보 이벤트로 그칠지는 앞으로 몇 년의 실행 성과가 갈라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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