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대신 스케이트보드, 파리 광장의 새 주인공
정치 집회 광장에서 발견한 10대들의 리듬
정치 집회 광장에서 발견한 10대들의 리듬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은 오랫동안 프랑스 사회의 감정이 가장 먼저 모이는 곳이었다. 월드컵 우승 환호, LGBTQ+ 프라이드 행렬, 노란 조끼 시위, 블랙 라이브스 매터 연대 집회, 샤를리 에브도 애도 행진까지, 1세기 넘게 이 광장은 파리지앵이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할 때 가장 먼저 향하는 무대였다. 사진작가 베랑제르 프로몽은 신작 연작 '레퓌블리크'에서 이 익숙한 정치적 스펙터클을 의도적으로 비껴간다. 대신 카메라를 들이댄 대상은 광장의 램프와 연석을 매일 점거하는 10대 스케이트보더들이다. 정치와 시위의 상징으로 굳어진 이 광장에서 카메라가 향한 곳이 다름 아닌 10대들의 몸짓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으로 읽힌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늘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광장의 진짜 거주자라는 관찰에서 출발한 이 연작은, 거대 서사 대신 일상의 반복 속에 숨은 조용한 저항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무엇이 달라졌나
'레퓌블리크'는 12점의 이미지로 구성된 초상 연작으로, 명암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키아로스쿠로 기법과 타이트한 프레이밍이 특징이다. 이는 정치 다큐멘터리 사진이 흔히 택하는 광각의 군중 샷과는 정반대의 문법이다. 여름 강한 햇빛 아래 명상하듯 무표정한 얼굴, 스케이트보딩으로 생긴 멍든 상체가 한 편의 회화처럼 화면을 채운다. 원래 계획은 '장소'를 기록하는 것이었지만, 관찰하는 사이 스케이트보더들이 광장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초점이 사람으로 옮겨갔다. 눈에 띄는 지점은 이들을 '광장의 왕자들'이라 이름 붙인 대목이다.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 그룹은, 매일 지나가며 사진을 찍는 행인들 앞에서 은근히 실력을 과시하는 퍼포먼스적 태도를 보인다. 즉 이 연작이 포착한 것은 순수한 스포츠 활동이 아니라 공공 공간에서 벌어지는 자기 연출과 관객성이다. 정치 집회가 구호와 깃발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이들은 트릭과 상처 난 몸으로 같은 광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왜 지금인가
프로몽이 개인적·집단적 저항을 반복해서 다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연작은 우연한 관심사 전환이 아니라 작업 세계관의 연장선이다. 그는 2022년 작 '사랑만이 우리 마음을 부술 것이다'에서 미술사 속에 충분히 재현되지 않은 여성 동성애를 다뤘고, 2018년 작 'Except the Clouds'에서는 아테네를 뒤흔든 소요 이후 폐허가 된 세계를 마주한 주민들을 기록했다. 두 작업 모두 사회적 격변과 그 이후 개인이 남기는 흔적을 응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레퓌블리크'가 다른 점은, 격변의 순간이 아니라 격변이 지나간 자리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 점유를 저항의 한 형태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미 시위·행진·추모의 장소로 상징성이 굳어진 공간에서, 그 상징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렌즈를 돌리는 접근은 다큐멘터리·거리 사진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아울러 패션과 아트 매체가 스케이트보드 서브컬처를 반복해서 조명해 온 최근 흐름과도 자연스럽게 겹친다.
다음에 볼 것
현재 '레퓌블리크'는 레퓌블리크 갤러리를 통해 총 12점의 이미지로 공개되어 있으며, 프로몽 특유의 키아로스쿠로 초상 스타일을 연작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를 접하는 독자라면 인물의 표정과 상처보다 먼저, 이들이 놓인 배경이 정치 집회 때와 똑같은 자리라는 점을 함께 살펴보는 편이 흥미롭다. 같은 공간이 어떤 날은 시위대의 함성으로, 어떤 날은 스케이트보드 바퀴 소리로 채워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 연작의 핵심 메시지다. 앞으로 상징적 공공 공간을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그곳을 일상적으로 점유하는 하위문화 커뮤니티의 시선으로 재조명하는 사진 작업은 버스킹, 파쿠르, 길거리 농구 등 다른 청소년 문화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 프로몽이 아테네와 미술사 속 재현 문제를 다뤘던 이력을 감안하면, 다음 작업 역시 특정 사건이 아니라 그 여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반복적 일상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번 연작을 계기로 파리의 다른 상징적 공간에서도 비슷한 시선의 사진 프로젝트가 이어질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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